“나는 독립군의 유족”

“나는 독립군의 유족”

나는 독립군의 유족

시카고 거주 김낙혼씨 

시카고 한인 김낙혼씨가 작은아버지 고 김좌목 옹이 최근 정부로 부터 독립유공자 인정과 함께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며 본보로 자필 편지를 보내왔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써 작은 아버지를 그리며 써내린 글귀에 그리움과 자부심이 동시에 느껴진다. 본보는 제보 편지의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김씨의 자필 편지 내용을 그대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아래는 교차로 애독자 김낙혼씨의 제보내용을 그대로 게재한다. 어법이나 어희의 오류를 본보가 교정하였음을 알린다. 

독립군 좌목씨의 조카의 사연을 들어 본다. 

셋째 조카 김낙혼이 어려서 낙양이라 부르던 유년 시절에 들은 이야기다. 순철(호적명 좌목) 삼촌이 일본 제국대학을 졸업하시고 모국길 현해탄을 건널때 일본군 형사로부터 (전라북도 독립군 7인 동지회) 중 1명으로 체포되어 평양 형무소로 직행 3년의 긴 고문과 고초와 굶주림으로 6척 장신의 몸은 결국 폐결핵을 얻게 되어 3기 말까지 오게 되니 죽기 3일전 형의(형무소 담당 의사)가 강제 출옥 시켜 내가 태어난 김제읍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2살된 간난 아기 였기에 어머니께선 할아버지댁 광활로 직행토록 하였으나 아버지와 싸움만 하였다 한다. 

아버지는 장남으로서 아우를 깍듯이 챙기고 보살펴 유학까지 보냈다 한다. 그러나 삼촌은 3일만에 먼 하늘 나라로 갔는데 나는 어린 것이 호흡곤란이 오고 열이 나며 급성 폐렴까지 가서 병원을 찾다 군산 제중병원에서 고가의 주사를 맞고 겨우 나았다고 한다. 

삼촌의 원인으로 아버지는 암양군도로 징용을 끌려 가셨고 어머니는 어린 것들을 먹여 살리려고 보부상까지 하였다 한다. 홀몸에 어머니께선 어린것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힘든데 엄청난 약값을 벌기 위해 온갖일을 다 하셨다 한다. 

조국과 민족에게는 청사의 깊이 빛날 기틀에 공헌을 했으나 형, 형수, 또 조카들에게 친척들에게 연자 맷돌을 각각 지워 주시고 가신 것이다. 

“독립군” 

생각하면 얼마나 모진 고통을 당했을까? 생지옥에서 살아 견디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암담한 생각뿐이다. 

한편 그동안 국가 보훈처로부터 아무런 인정을 못받았는데 금번에 7인 독립군 동지 중 1인이 살아계서서 심혈의 증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다시한번 삼촌(좌목)께 명복을 빌며 독립군 동지분들께도 먼 미국에서 머리숙여 심심한 사의를 표명하는 바입니다. 

독자 여러분, 수천만의 독립투사들로 ‘대한민국’이 건립되었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이 기사는 ‘시카고교차로’ 웹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sem.chicagokyocharo.com/board/contentsView.php?idx=1480127